몽진

삶은 재미다, 1986프로덕션

2023. 09. 20

강아지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꼭 가고 싶은 축제가 있어요. 

반려견과 함께 힘차게 달리는 댕댕런과 숲길을 걷는 댕댕트레킹인데요. 

슬프게도 저는 반려동물이 없어요. 강아지도, 고양이도…. 

그래서 댕댕런을 기획한 1986프로덕션 윤명호 대표를 만나고 왔습니다. 

사무실에 예쁜 초코푸들, 일구가 있거든요! 일구의 우렁찬 멍멍을 BGM 삼아 인터뷰를 진행했어요.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1986프로덕션 대표, 문화기획자 윤명호입니다.

10월에 댕댕런을 앞두고 계시잖아요.

맞아요. 10월 28일(토)에 가평 자라섬에서 댕댕런2023이 열릴 예정이에요.

댕댕이페스티벌부터 댕댕런, 댕댕트레킹까지, 반려견 페스티벌이 눈에 띄어요.

댕댕이 프로젝트의 시작은 2017년 댕댕이페스티벌이었어요. 이듬해부터 댕댕런을 시작했고요. 반려견과 함께 즐기는 행사를 통해 반려견 인식을 바꾸고, 반려견과의 보다 더 나은 삶을 제시하고 싶어요. 강아지와 관련한 여러 문제를 알리려는 시도도 했고요.


예를 든다면요?

예컨대 개 농장에서 식용견을 구출하거나 1미터 목줄에 매어 살아가는 반려견의 삶을 알리는 거죠. 유기견이 반려견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힘쓰는 유기견 보호소에 댕댕런 참가자 1인당 1kg의 사료를 기부하기도 했어요.

그보다 더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건 지금까지 한 번도 큰 문제 없이 행사를 잘 마무리했다는 거예요. 댕댕이페스티벌은 5천여 명이 넘는 사람과 3천여 마리의 반려견이 방문한 큰 행사였거든요. 크고 작은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데, 질서정연하게 행사를 잘 마무리했다는 건 반려견과 함께 누리는 삶의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고자 하는 취지와 잘 부합하죠.

댕댕이페스티벌에서 댕댕런으로, 댕댕트레킹으로 점차 변화한 이유가 있을까요?

댕댕이페스티벌과 댕댕런을 함께 기획하면서, 단순히 보고 즐기는 형태보다 함께 땀 흘리며 시간을 보내는 형태가 더 의미 있다고 생각했어요. 팬데믹으로 많은 인원이 한자리에 모일 수 없던 상황이기도 했고요. 고즈넉한 숲길에서 프라이빗하게 반려견과 시간을 보내는 행사를 기획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으로 2021년부터 댕댕트레킹을 시작했어요.


빵빵런이라는 행사도 운영하시잖아요.

빵빵런은 빵을 좋아하는 사람이 모여 타인과 나눌 수 있는 시간을 갖자는 게 취지였어요. 제가 빵을 좋아하거든요. ‘함께 모여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페스티벌보다는 마라톤 형태가 잘 어울리겠다고 판단했어요. 빵빵런 완주 메달은 동기를 부여하며 승부욕을 자극시키고, 빵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동질감을 고취시킬 거라고 예상했죠.

그런데 의외로 마라톤이나 러닝을 해본 적도, 관심도 없는 분들이 많이 신청하셨어요. 그저 빵이 좋아서요. 마라톤은 안 뛰고 빵만 드세요. 신기해요. 더구나 올해는 저희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많은 분이 참가해 주셨어요. 인증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바게트 판넬, 빵 튜브 같은 소품을 여러 개 마련했는데, 반응도 좋았죠.

댕댕런, 빵빵런 같은 행사를 기획하는 문화기획자가 된 이유가 궁금해요.

문화기획을 하게 된 계기는 거의 다 비슷할 거예요. 21살에 처음으로 펜타포트 락페스티벌에 갔어요. 쿵쿵 울리는 음악 속에서 정말 하고 싶은 일이라는 걸 느껴서 전역 후에 페스티벌 대외활동을 했어요. 여러 경험을 쌓으면서 ‘내 길이 맞다’는 확신을 얻었고 4학년 때부터 문화기획 회사에 입사하면서 문화기획자의 길을 본격적으로 걷게 됐죠. 일하다 보니 여러모로 학업적으로 부족하다는 마음이 들어 예술 경영으로 전공을 잡고 공부를 더 했어요. 학부 전공이 이공계인데, 그때는 ‘학교는 졸업까지 나의 인내심을 테스트하는 곳이다’라고 여겼거든요.

청춘페스티벌을 기획했었다고 들었어요.

첫 회사에서 청춘페스티벌과 청춘아레나를 기획하고 운영했어요. 처음에 5명이었던 회사가 100명 남짓 늘어날 정도로 호황을 맞았는데, 페스티벌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는 경험이 늘다 보니 내 것을 만들고 싶은 마음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1986프로덕션을 차리신 건가요?

아니요. 저는 제가 사업가 체질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사업할 생각도 없었고요. 그즈음에 국악 쪽에서 유명한 친구가 제안을 해왔어요. 좋은 콘텐츠가 있는데 기획자가 없다면서요. 사업할 생각이 없으니 만약 함께할 마음이 있다면 우리가 6개월 동안 살 수 있는 돈을 마련해 오라고 했는데, 정말 본인이 3천만 원을 들고 왔어요. 그렇게 2016년에 1986프로덕션을 만들게 됐죠.

페스티벌은 사람이 많잖아요. 어떻게 페스티벌을 업으로 삼을 생각을 하셨을까, 궁금했어요.

누군가에게는 페스티벌이 피곤할 수 있는 일이라는 걸 전혀 몰랐어요. 와이프를 만나고서야 알았지, 저는 모든 사람이 다 재미있어하는 줄 알았어요. 아닐 수 있다는 걸 알고부터는 저희가 원하는 타겟이 좋아하는 방향으로 기획하려고 더 노력하고 고민해요. 그만큼 진짜 니즈가 확실해요. 기다렸다가 신청하고 기대하면서 참여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그만큼 정말 하고 싶은 콘텐츠라는 뜻이잖아요.

갑작스럽게 닥친 팬데믹으로 힘들진 않았어요?

연초에 이미 10월까지 프로젝트가 다 잡혀 있었던 상황에서 코로나19가 발생한 거예요. 모든 프로젝트가 취소될 위기였지만, 취소와 연기는 최후의 보루예요. 어떤 상황에서도 떠올려서는 안 되는 단어예요. 이렇게 예산이 없고 리스크가 클 때 기획자의 역할이 중요해요.

당시 많은 인원이 모일 수가 없으니까 온라인으로 진행했는데, 의외로 수익이 가장 많이 나긴 했어요. 비용 절감이 많이 되더라고요. 사람들의 반응도 좋았어요. 시간과 장소의 제한이 사라졌잖아요.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장소에서 참여할 수 있다는 점이 오히려 장점으로 작용한 거예요.


코로나19이었음에도 페스티벌 결과가 나쁘지 않았네요.

취소나 연기까지 고려해야 했던 상황이었던 것에 비하면 정말 좋은 결과를 낸 거죠. 온라인 참가가 여러 번 반복돼 지루함을 느낄 즈음에 나온 아이디어가 댕댕트레킹과 빵빵런이에요.

빵빵런은 서울 노들섬에 빵 본부를 만들고 알아서 근방을 뛰고 오면 빵 가방을 준다는 게 주요 내용이었어요. 온라인과 오프라인 마라톤의 중간 모델이죠. 빵 가방에 빵을 한가득 채워서 드리니까 너무 즐거워하시더라고요. 댕댕 트레킹은 팬데믹에 유행했던 트레킹을 접목해, 리조트에서 국내 여행을 즐기면서 알아서 트레킹 코스를 완주하면 인증 선물을 주는 거예요.

빵 가방이 목적이었던 분도 많았겠네요.

네. 그저 빵이 좋아서 신청하신 분들도 많았죠. 마라톤을 표방하고 있지만, 사실 이건 마라톤이 아니거든요. 독서 모임의 본질이 네트워킹이지만 책이라는 탈을 쓰고 있는 것처럼 댕댕런이나 빵빵런도 마라톤의 탈을 쓰고 있을 뿐이예요. 빵빵런은 빵둥이(빵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즐기는 축제인 거고, 댕댕트레킹은 강아지와 함께 산길을 산책하는 축제예요.

댕댕트레킹은 산 한 번 안 타본 분들이 많이 와요. 동네 산책하듯이 가볍게 오시지만 실은 1,300m 고도에서 산행하는 거거든요. 생각보다 험해요. 강아지들은 주인의 발이 혹사당는 건 전혀 모른 채 그저 행복하고요. 독서 모임의 본질이 네트워킹이지만 책이라는 탈을 쓰고 있는 것처럼 댕댕런이나 빵빵런도 마라톤의 탈을 쓰고 있을 뿐이예요.

댕댕트레킹의 개똥교환소처럼 재미있는 프로그램이 눈에 띄던데요.

타겟이 마라토너가 아니라 가능한 거예요. 반려견을 데려오면 무조건 해야만 하는 행위 안에서 활동이 이뤄지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먹고 자고 놀고 싸고. 저희는 그걸 채워주는 거예요. 먹거리, 놀거리를 만들어 두죠. 그런데 강아지 배변이 문제였어요.

개똥은 쓰레기예요. 강아지 한 마리가 우리 집 앞에 똥을 싸는 것도 문제시되는 상황에서 천 마리가 모이는 행사의 개똥은 상상을 넘어서요. 우리가 줍는 데에는 한계가 있으니까 개똥을 효율적으로 처리할 방안이 필요하죠. ‘반려인이 자발적으로 가져오게 만들자’에서 시작한 게 개똥교환소였어요. 비슷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곳이 있었고, 거기에서 아이디어를 얻어서 발전시킨 프로그램인데 반응이 좋았어요.

이쯤 되니까 문화기획은 어떻게 일을 하는지 궁금해지네요.

다른 문화기획사와의 차이가 있다면 업무 형태일 것 같아요. 1986프로덕션은 자체 콘텐츠와 대행 프로젝트의 비율이 8:2정도 돼요.

문화기획 업종의 특성상 하나의 프로젝트를 하면 4~6개월 뒤에는 끝이 나요. 마무리가 확실하게 지어지니까 일정을 러프하게나마 짤 수 있어요. 매년 연초에 자체 콘텐츠 일정을 먼저 계획하고, 남는 시간에 외주를 받아요. 입찰은 안 해요. 입찰에 쓸 힘을 다른 프로젝트에 더 싣고 싶어요. 명확하게 저희에게 의뢰하는 대행 프로젝트를 받고 있죠. 회사 규모가 크지 않은데 매년 큼직한 콘텐츠가 잡혀 있으니까 저희가 하고 싶은 프로젝트를 선택할 수 있어서 좋아요. 경영자 입장이 아니라 기획자의 시선에서 바라보니까 가능한 일이겠지만요.

페스티벌을 기획할 때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나요?

본질과 핵심 가치를 가장 많이 고민해요. 본질은 근본, 절대 뺄 수 없는 것이고 핵심 가치는 추구하는 방향성이라고 할까요? 나이키의 본질은 신발을 파는 회사, 핵심 가치는 위대한 선수들에게 경의를 표하는 것이죠. 1986프로덕션의 본질은 문화를 가공하고 활용해서 돈을 버는 것이고요. 핵심 가치는 ‘삶은 재미’예요. 기획자가 행복해야 재미있는 기획을 할 수 있거든요. 찌들고 힘들고 불행하면 재미있는 기획은 절대 나올 수 없어요.

그런 의미에서 ‘댕댕런의 본질은 뭘까? 강아지랑 산책하는 행사구나.’, ‘빵빵런의 본질은 빵을 좋아하는 사람이 모여서 노는 축제야.’ 이런 식으로 행사의 본질을 끝없이 고민하죠. 본질은 타겟에 따라 변할 수 있지만, 핵심 가치는 변하면 안 돼요. 그래서 타겟을 정확히 파악하고 본질을 명확하게 분석해야 성공적인 행사를 진행할 수 있어요. 예를 들어 댕댕런 반려견들이 모두 실버견이 된다면 마라톤을 할 수 없잖아요. 그러면 소풍을 하든, 개모차를 태우든 그 형태는 바뀌겠지만 핵심 가치는 그대로인 거죠. 반려견과의 보다 더 나은 삶이요.

본질에 집중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예전에 동료 기획자들이 자꾸 쓸데없는 것에 돈을 쓰는 걸 봤어요. 3~4천만 원짜리 무대를 만들고 LED를 달고 이런 것들이요. 그러다 어느 날, LED를 싣고 오던 차가 사고 나서 세팅을 못 하고 페스티벌이 시작됐어요. 행사가 진행되는 동안 조금씩 세팅했는데, 관객들이 아무도 몰랐어요. 사고가 있었다는 것도, 배경 영상이 달라지고 있던 것도 전혀 언급을 안 하더라고요. 그게 본질이 아니었던 거죠.

애초에 적자가 나는 프로젝트였어요. 그런데도 큰돈을 쓴 거예요. 적자를 보면서까지 사고가 났다는 것조차 모르는 부분을 고수하면서 우리가 얻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회의감이 들었어요. 그러면서 본질의 중요성을 더 많이 고민하게 되었어요.

1986프로덕션의 목표가 궁금해요.

1986프로덕션의 꿈은 국내 최고의 기획 회사가 되는 거예요. 정량적인 수치보다는 정성적으로, 우리의 본질은 기획이니까 기획력 부분에서 국내 최고라고 인정받는 회사가 되고 싶어요.


신규 콘텐츠를 계속 발굴하고 있는데, 직원들의 아이디어로 꾸려진 페스티벌이 하나씩 자리 잡다 보면 거의 매달 진행할 수 있는 메가 콘텐츠가 완성될 것 같아요. 먼지학교도 기획 쪽을 조금 더 발굴해서 키워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했던 거고요. 아직 한 번밖에 운영을 안 했지만, 앞으로 정기적으로 진행하면서 확장 모델을 생각하고 있어요. 강연 퀄리티도 더 높이고요.


성숙한 페스티벌 문화를 바탕으로 댕댕이 프로젝트를 더 성장시켜 세계적으로 무대를 넓혀보고 싶은 욕심도 있어요. ‘개를 먹는다고 알려진 나라에서 이렇게 대대적인 반려견 페스티벌을 개최한다’는 걸 알리고 싶은 거죠.

윤명호 대표님의 꿈은 무엇일까요?

개인적으로는 꿈보다 다음 스텝이라 말하고 싶어요. 조금 더 현실적인 목표인 셈이죠. 다음 스텝으로 공간 기획을 바라보고 있어요. 사무실도 제가 직접 다 컨설팅해서 만든 거고, 제주도와 신촌에서도 공간 기획을 했었어요.

지금 강원도 고성에 30년 된 2층짜리 주택을 개조한 삶은재미 1호점이 있는데, 임직원이나 주변 사람들이 그 공간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오는 걸 보면서 저도 즐거움과 행복을 느껴요. 삶은재미 2호점을 만들려고 지역을 물색 중이에요. 좋은 공간을 만났으면 좋겠네요.

[글ㅣ전민지, 사진ㅣ김재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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